피트 타운젠드는 자신의 차가운 무대의 존재감의 이유가 어렸을 때 할머니와 함께 2년 동안 살았을 때 견뎌야 했던 경험 때문에 발생했다고 믿는다.
그는 오로지 자신의 자서전인 'who I am' 을 적을 때 어머니와 대화를 나눌 때 경험을 떠올렸다고 한다.
그리고 그는 2002년에 죽어버린 존 엔트위슬 말고 기타를 치는것을 더 선호했다고 말했다. (할배요 이건 아니지 시발)
타운센드는 그가 네살떄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도록 보내졌다고 한다, 그리고 그녀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같이 있어야 했다고 한다. 그는 그녀를 "매우 빅토리언하고 지배적이었으며 도덕적 가치 따위는 없었다."라고 표현을 했다
(매우 빅토리언 하다 = 낣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, 구시대적이다)
그의 어머니와의 대화중 기억들은 돌아왔다. 타운센드는 롤링 스톤즈(잡지)에게 말했다. "그녀가 그 2년의 기억을 채워주어 주며, 나는 이제야 왜 나의 작곡들이 이렇게 어두운지, 무대에 서있는 나의 모습들이 항상 화가 나있고 분노로 가득 차여 있는지 알 수 있었어요."
"이 책에서 제가 발견한것은 이 모든 것이 저를 만든 것이라는 걸 알았어요, 그것은 좋았어요. 왜냐하면 내가 내 주변에 있는걸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에요."
"관객들은 제가 하는짓에 좋아했어요, 왜냐하면 그들도 나랑 비슷한 시바알 것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."
(ㅠ피트 역시 천재야 말 더럽게 어렵게 해서 번역 못하겠다)
"나는 화를 내고 싶었지만 정반대였죠."
하지만 엔트위슬과 키스문을 1978년에 보내버리고 피트는 로저와 그들의 유령을 느낀다고 했다 (따흐흑)
"우리가 더 후의 2기의 투어를 2001년 정도에 시작할 때 우리는 여전히 그 소리를 냃수있었어요, 특히 잭 스타키와 함께."
"이제는 더욱 어렵죠, 존의 소리는 매우 풍부했고 새로웠어요. 존이 죽었을때 무대에는 구멍이 있어요, 그리고 저는 그 구멍을 채울수있었고 자리를 잡을수 있어요. 말해야겠지만, 기타리스트로서는 존이 없을때 연주를 하는걸 더 선호해요."
"하지만 더 후의 멤버로서 매우 강력하고, 놀라우며 본능적인 소리를 내는 소리를 냈는 그는 이제 없어요. 난 그걸 도저히 못해요."
타운센드는 2003년에 페도파일 검사를한 경찰로서 편지를 받았는데 거기에는 "우리는 당신이 페도가 아니라는걸 알았아요" 라고 적혀져있다는걸 밝혔다
이렇게 다 밝혔는데 아직도 오해하는 양덕들하고 팬들 다 줘패고싶은 심정이 크다
2012/10/14일 피트 타운젠드의 지옥같은 어린시절
클래식 락 잡지
음 번역은 역시 똥망했다 나 만족하라고 쓰는거라 어쩔수없어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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